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스쿠 다 가마 (문단 편집) === 미리 호 학살 사건 === 바스쿠 다 가마의 악행, 수많은 살인과 약탈 중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것이 미리 학살 사건이다. 보통 대항해시대 당시의 도덕관과 현대의 도덕관은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당대에도 끔찍하고 사악하다고 지탄받을 정도의 사건이었다. 바스쿠 다 가마 함대는 메카를 왕복하는 순례선 미리 호를 나포했다. 미리 호는 자우하르 알 파키(Jauhar Al Faquih) 같은 아랍 세계에서 손에 꼽는 부호들과 부유한 승객들이 가득 탄 배였다. 승객들은 몸값 협상을 제시했다. 배 여러 척에 향신료를 가득 채워 주겠다, 캘리컷 통치자 자모린과의 관계에 기름칠을 해주겠다 같은 매력적인 조건이었다. 그러나 5일 동안 진행된 교섭은 결국 무산되었다. 불신자들을 때려죽일 생각으로 가득했던 바스쿠 다 가마는 모든 제의를 묵살하고 그냥 배의 화물을 모조리 털어 버렸다. 그리고는 승객들을 무장해제시킨 뒤 배에다 불을 왕창 지르고 런을 해 버린다. 함대와 동행했던 서기 토메 로페스(Thome Lopes)[* 당시 포르투갈어 표기. 현대는 Tomé Lopes라고 한다.]의 기록에 따르면 바스쿠 다 가마는 승객들이 허둥지둥하며 배 안에서 타죽는 모습을 멀리서 느긋하게 감상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. 미칠 듯이 사악하고 악의적인 의도였다. 그러나 승객들은 가까스로 화재를 진압하는데 성공했다. 하지만 승객들에게 악몽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광경이 몹시도 꼬왔던 바스쿠 다 가마가 다시 배를 나포해 버린 것이다. 승객들, 그리고 여인들은 아이를 내밀고 품에 있던 보석들까지 모두 바치며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바스쿠 다 가마는 이런 호소를 완전히 무시했다. 바스쿠 다 가마는 해병대를 승선시켜 배에 불을 또 질렀다. 그리고는 배가 반쯤 불에 탈 때까지 해병대를 퇴선시키지 않고 포위망을 유지하기까지 했다. 즉 이번만큼은 실패 없이 승객들이 타죽을 때까지 불을 지르려 한 것이다. 결국 미리 호의 승객들 거의 전원이 학살당했다. 죽기 살기로 선원들에게 맨손, 도끼로 덤벼든 승객들은 끔찍하게 살해당했고 싸울 능력이 없었던 사람들은 불에 타 죽었다.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승객들에게는 더 끔찍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었다. 바스쿠 다 가마가 롱보트에 선원들을 태워 바다로 내보내고는, 허우적거리는 승객들을 창으로 확실하게 찔러 죽이게 한 것이다. 확인 사살이었다. 살아남은 것은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유아들, 즉 부모와 떨어트려놓아 세계관을 기독교 버전으로 리셋시킬 수 있는 갓난아이들 뿐이었다. 물론 아이를 내밀며 살려달라고 빈 어머니들은 모두 살해당했다. 아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친부모를 도륙한 것이다. 학살이 끝난 뒤 총 사망자는 300여명이었다. 배 한척에 탄 승객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조리 학살당한 것이다. 바스쿠 다 가마의 입장은 이게 다 1500년의 교역소 습격 사건의 복수라는 것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